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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총,균,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완벽 핵심 요약 (인류 문명의 불평등은 어디서 왔는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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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총, 균, 쇠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저자/옮긴이: 재레드 다이아몬드 / 김진준

출판사: 문학사상

 

인류 문명의 발달 속도는 왜 대륙마다 달랐을까요? 서양 문명이 세계의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인종적인 우월함 때문일까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명저 『총, 균, 쇠』는 이러한 역사적 불평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환경적, 지리적 차이에서 찾아냅니다. 방대한 인류 역사를 꿰뚫는 이 책의 핵심 내용을 각 부와 장별로 상세히 요약했습니다.


프롤로그 - 현대 세계의 불평등에 대한 의문을 품다.

 

1. "왜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저자는 1972년 조류의 진화를 연구하고자 뉴기니에 있었다. 한 때 해변을 걷던 중 우연히 뉴기니의 정치가 얄리와 함께 걷게 되었을 때 그로부터 "왜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겁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고 그 이후로 인류의 진화, 역사, 언어등의 다른 여러측면들에 대해 연구하고 집필해왔으며 마침내 이 책으로 얄리의 물음에 답하려고 한다.

 

 

2. 인류의 발전은 어째서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을까? 각각 구별되는 민족들의 상호작용의 역사는 정복, 유행병, 종족 학살 등의 과정을 통해 현대 세계를 형성해왔다. 그러한 충돌의 여파는 여러 세기가 지난 후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고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3. 문명 연구의 동기는 문명의 우위 찬양이 아닌 단순한 역사 이해 얄리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서양의 문명이 우월하여 그들이 다른민족을 지배하고 더 발전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보일 수 있어서 저자의 탐구가 비판받을 수 도 있지만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범죄를 연구하는것처럼 이는 단순히 역사에 대한 이해를 위함이지 그것을 정당화 하려는것은 아니다. (뒤에 나올 책의 내용들을 보면 더욱 그럴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또 한 서양의 문명이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의견에도 저자는 문명이란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것이지 특정한것이 좋은건 아니라고 주장한다.

 

4. 암묵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인종주의 현재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이 유럽의 백인들보다 기술발전이 뒤쳐져있는것은 인종적, 진화적으로 백인의 지능이 높아서 그렇다." 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5. 유전적 혹은 발달상의 불이익을 극복한 서양인 저자가 보기에 뉴기니 원주민들은 백인들보다 지능이 더 높은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그들이 낯선곳을 마주했을 때 그곳을 파악하는 능력을 보면 그러하다. 또 한 지능이란 어린시절의 자극이 중요한데 백인 아이들은 주로 텔레비전앞에서 수동적인 생활을 하는 반면 뉴기니인들은 어른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의 좀 더 능동적인 생활을 한다. 그리고 중앙집권적 체제나 치안력이 보장되고 인구밀집도가 높은 백인사회에서 사망에 치명적인 원인이 되는것은 전염병이므로 그것은 전염병에 저항하는 유전적인 저항력을 강화시키는 반면 뉴기니의 원주민들은 주로 부족간의 전쟁, 살인, 식량조달의 어려움 등으로 사망을 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전적인 저항보다 지능의 상승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백인에 비해 앞서 말한 타 대륙의 원주민들이 현대 문명에서 뒤쳐져 보이는것은 그들이 백인들과 어린시절에 받는 교육등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6. 민족간의 역사적 운명이 달라진 궁극적 원인 이 원인에 대한 여러가지 가설이 있지만 책이 쓰이던 당시 기준으로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7. 역사 진행의 차이는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 얄리의 질문에 답하려면 수많은 분야의 지식에 통달해야한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종합하여 통일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 많은 분야에 통달한 한 사람이 필요하다. 저자는 어릴적부터 여러 분야에 대한 지식을 익혀왔기에 그런 면에서 답을 찾는데에 유리하다.

 

8. 역사란 "지겨운 사실들의 나열"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책의 목차들에 관한 설명이 나열되어 있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으로 지난 1만 3천년의 모든 역사를 설명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얄리의 질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실들을 정리했다고 한다. 또한 광범위한 경향들로인해 만들어져온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흥미롭고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1부 - 인간 사회의 다양한 운명의 갈림길

1장 - 문명이 싹트기 직전의 세계 상황

1. 인류 역사가 보정된 전개 연대는 B.C. 11,000년 탄소측정 연대보다 보정 탄소 측정 연대가 더욱 정확하기에 보정탄소 측정연대로 현대와 같은 골격과 두뇌용적을 갖춘 인류가 등장한 것은 기원전 11,000년 부터다.

 

2. '대약진'의 시기에 나타난 현생 인류 크로마뇽인 인류의 역사는 크로마뇽인이 등장한 5만년 전 부터인데, 이는 표준화된 석기, 예술품 그리고 쓰레기들에서 나오는 골기(그 전에는 쓰이지 않던)와 여러 부품들로 만들어진 도구 및 추운 환경에서의 생존능력 향상으로 이어지는 의복의 개선등으로 구분되는데 그 시점을 '대약진' 이라고 한다. 또 한 크로마뇽인이 한곳에서 등장하여 세계 각지로 퍼져나간것인지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한 것인지 학계에 의견이 분분한데 유럽지역에서 네안데르탈인이 크로마뇽인들의 등장으로 멸종한 것을 증거로 저자는 전자를 지지한다.

 

3. 인류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오스트레일리아 대형 동물군의 멸종 인류의 사냥기술과 도구가 서서히 발전하던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의 대형동물들은 그와 함께 적응하고 발전하여 멸종하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에 대한 적응과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오스트레일리아의 대형 동물들은 이미 발전된 사냥기술과 도구를 가지고 이주해 온 인간들에 의해 멸종이 되었다. 그리하여 가축화 될 수 있는 동물들이 남지 않게된 것이다.

 

4. 남북아메리카의 인류 기원을 알려주는 클로비스 유적 시베리아에서 베링육교를 건너 북아메리카로 이주한 인류는 1000년쯤 후에 남하하는데 이는 클로비스 시에서 발견된 유적들로 인해 알 수 있다. 클로비스에서 시베리아보다 유적이 많이 발견된 것은 추운 시베리아에 비해 클로비스의 기후가 온화했고 다른 현생인류가 도달한 처녀지(처음 도달하여, 개척이 시작되기 전인 곳)에서 인류가 급속히 증가한 것 처럼 클로비스에서도 인류가 급속히 증가하여 파타고니아 쪽으로 점점 이동하였다. 남아메리카에서도 오스테리일리아 에서 처럼 발전된 사냥기술과 도구를 갖고있던 인류에 의해 가축화 될 수 있는 대형 동물군은 멸종했다.

 

5. 클로비스 수렵민들은 최초의 아메리카인이었을까? 클로비스 유적으로 알게된 것보다 더 먼저 인류가 살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자는 그러기에 인류의 흔적이 너무 미미하고 방사성 탄소연대는 앞서 존재하던 탄소와 뒤섞일수도 있으면 오염의 가능성이 있기에 클로비스 유적으로 알 수 있는 시기인 B.C. 11,000년을 남북아메리카에서 인류가 살아가기 시작한 때로 본다.

 

6. 남보다 '먼저 출발'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아프리카에서 인류가 먼저 시작됐다 할지라도 각 대륙의 인류가 다른 발전 속도를 보인것의 원인과 관련해서 그 이전까지의 원시적인 인류는 큰 의미가없다. 결국 인류가 먼저 등장 했어도 그 인류가 다른곳으로 이동하여 각각 이동한 곳의 지형과 기후에 맞닥뜨리면서 그에 맞게 발전해왔기에 인류가 먼저 등장한 아프리카가 유독 유리한것은 아니었다고 저자는 보고있다.

2장 - 환경 차이가 다양화를 빚어낸 모델 폴리네시아

1. 모리오리족과 마오리족의 잔혹한 충돌 농경문화를 갖고있던 폴리네시안이 뉴질랜드로 이주하여 마오리족이 되었고 또 그들 중 일부가 채텀제도로 이주하여 모리오리족이 되었다. 이렇게 같은 뿌리를 두고 있으나 마오리족은 집약적 농경문화와 강력한 지도층을 갖춘 형식으로 발전하였고 모리오리족은 오히려 수렵채집방식으로 되돌아가고 강력한 지도층을 갖추지 않은 쪽으로 발전하였다. 그렇게 발전한 마오리족에게 모리오리족은 학살당하였는데 이는 인류가 같은 뿌리를 두었지만 각기다른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발전한 현상과 매우 유사하여 그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

 

2. 인간의 환경 적응력 연구 가능케 한 자연 발생적 실험 체텀제도는 한랭한 기후이기에 농경에 적합하지 못하여 모리오리족은 수렵채집방식으로 회귀했고 마오리족이 있던 뉴질랜드 북부는 따뜻했기에 농경문화가 이어질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음식의 저장 가능 유무가 여러 분야의 식량비생산 직업인구를 생성 가능케했고 이것이 모리오리족과 마오리족의 차이로 이어진것이다.

 

3. 폴리네시아의 다양한 환경적 변수 폴리네시아는 각 지역마다 다양한 환경을 갖고있고 다른 섬들과 왕래를 하기 어려운 외딴 지역도 있다. 이러한 변수들이 다양한 사회형태를 만들었다.

 

4. 환경 요인에 따른 먹거리의 작물화 방법 각 환경에 맞게 가축을 기르거나 양어 그리고 다양한 농사법이 발달하였다.

 

5. 인구밀도가 폴리네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의 다양화에 미친 영향 환경과 지형의 차이는 수렵,채집과 농사 같은 식량 조달 방식과 서로 왕래하기 좋은 지형에서 병합되고 통일되는 정치적 면적에 영향을 미쳤다. 또 한 이는 인구밀도에도 영향을 미쳤고 정치적 면적 당 인구 밀도는 경제에 영향을 미쳤는데 밀도가 낮을수록 경제는 단순한 형태에서 높을수록 복잡한 형태가 되었다. 또한 정치적으로 밀도가 낮을수록 평등하고 추장에 대한 권력 쏠림 현상이 덜하였으며 높을수록 추장의 권력이 강하였다. 사회의 복잡도 또한 정치적 면적당 인구밀도에 비례했으며 그 지형에서 나오는 유형적 물질들에 따라서 도구와 같은 유형 문화들의 차이가 있었으며 인구밀도가 높아 추장의 권력이 강하고 동원할 수 있는 인구가 많을 경우 더욱 고도화 되고 거대한 구조물들을 생산 할 수 있었다.

 

6. 각 대륙의 다양화를 야기한 환경적 차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폴리네시아는 좋은 환경적, 지형적 변수가 문화와 발전의 차이를 야기한다는 것의 좋은 예시이다. 그렇지만 이는 극히 작은 예시일 뿐 각 대륙의 차이는 더욱 광범위하다.

3장 - 유렵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

 

1. 근대사의 가장 큰 충돌 아타우알파 생포 사건 1532년 11월 16일 스페인의 피사로와 잉카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가 마주쳤을 때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생포하였다. 이로 인해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더욱 쉽게 정복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아타우알파를 태양신이라 믿고 절대적으로 복종했던 잉카제국이 생포된 상태의 아타우알파의 말에 절대적으로 복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타우알파를 볼모로 잡고있는동안 피사로가 파나마에 있는 원군을 부를 수 있었고 잉카제국의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을 수 있게 한 요인들은, 본질적으로 근대에 세계 각지의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에서 벌어졌던 유사한 많은 충돌 사건들, 그걸들을 결정지었던 요인들이기도 하다.

 

2. "그대가 패하여 포로가 된것을 모욕으로 생각하지 마시오." 피사로는 함정을 파고 아타우알파를 초빙했지만 인디언들의 규모가 워낙 커서 스페인 군인들은 겁을 먹었다. 아타우알파가 수사가 내민 성경책을 집어던지고 수사가 격노하여 피사로에게 공격을 요청하자 피사로는 공격 명령을 내렸다. 스페인군들의 총에서 나오는 큰소리와 그들이 인디언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말에 매달아놨던 방울들로 인해 인디언들은 겁을먹었고 훨씬 많은 병력에도 불구하고 모두 도망가며 스페인군들에게 처참하게 짓밟히고 죽음을 맞이했으며 아타우알파도 생포되었다. 피사로는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고 본인들은 잉카제국보다 큰 제국과 더 강한 군주들을 복속시켜왔고 하느님의 선한 뜻을 가르치러 온것이기 때문에 모욕으로 생각지 말라고 말했다.

 

3. 어째서 스페인인은 원주민들을 참패시킬 수 있었을까? 그 당시 인디언들과 스페인 군인들간의 장비의 큰 격차로인해 수적으로 열세한 스페인 군인들이 원주민들을 참패시킬 수 있었다. 백인들에게 강력하게 저항했던 인디언 부족들은 모두 이후에 말과 총을 손에 넣어 능숙하게 다루게 된 부족들 뿐이었다.

 

4. 강력한 정복 요인 말, 쇠 무기, 총, 갑옷 피사로의 군대가 사용했던 화승총은 장전하고 사격준비를 하는데에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큰소리를 내어 상대의 사기를 저하시키는데에 큰 효과가 있었다. 스페인 군대의 쇠갑옷은 인디언들의 날붙이가 없는 곤봉에 타격을 거의 입지 않게 해주었으며 말은 돌격으로 인한 충격 그리고 말이 없고 오로지 보병으로 이루어진 인디언들의 파수꾼이 정보를 전달하기 전에 따라잡을뿐더러 기습에 용이하다는 장점등 전투에서 여러 이점이 있었다. 또 한 아타우알파의 잉카제국은 문자가 없었기에 정보의 전파 면에서도 스페인 군대보다 불리했으며 다른 대륙으로의 항해가 가능한 기술과 배가 없었기에 다른 대륙으로도 진출하지 못했다.

 

5. 치명적인 계산 착오의 함정 속으로 뛰어든 뛰어든 원주민 지도자들 문자의 부재는 정보의 격차를 만들었고 아타우알파의 잉카군은 스페인군의 뛰어난 장비와 조직력에 대해 알지 못하였다. 또 한 문자의 부재는 스페인의 군대가 활용한 그 함정 전략이 역사적으로 여러번 일어났고 다른 대륙에서도 비슷한 케이스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상기시켜주지 못하였다. 이러한 정보들의 격차가 인디언들이 유럽인들에게 농락당한 원인이 된것이다.

 

6. 유럽인들이 신대륙을 식민지로 만든 직접적 요인들 앞서 말한 요인들은 유럽인들이 다른 대륙을 식민지로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렇지만 그 요인들이 어째서 타 대륙보다 유럽에서 발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저자는 2, 3부에서 바로 그 궁극적 인과관계의 원인을 설명하려 한다.


2부 - 식량 생산의 기원과 문명의 교차로

4장 - 식량 생산의 기원

 

1. 식량 생산의 시작 시기와 지리적 변동 관계 농경의 시작 시기의 차이가 그것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었던 총, 균, 쇠의 등장 시기의 차이를 만들어냄

 

2. 정복과 식량 생산 사이의 주요 연관성 야생의 동식물의 종은 대부분 식량으로서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야생에서는 식량으로서 적합한 극소수의 종을 농사나 가축화로 대량생산하게 되면 수렵 및 채집보다 훨씬 많은 식량을 생산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그만큼 부양할 수 있는 인구의 수가 늘어나기때문에 인구밀도가 높아질 수 있다. 또 한 이동이 농경보다 비교적 잦은 수렵 채집보다 거처가 한곳에 정해져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농경사회가 출산율도 더 높아져 인구 증가에 영향을 준다.

 

3. 정착 생활에 따른 가축화와 작물화의 이점과 그 영향 수렵 채집 사회에서 먹거리를 찾아 이동 할 때 사람들이 들고 이동할 수 있었던 자식의 수는 한명이었다. 따라서 첫째가 걸어서 이동할 수 있기 전까지 둘째 아이를 출산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농경과 가축화로 인해 가능했던 정주형 사회에서는 인구를 생산할 때 그런 제약에 걸리지 않았다. 따라서 인구가 더 크게 증가 할 수 있었고 잉여 식량의 저장은 식량 생산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분야에 몰두할 수 있는 전업자들을 먹여 살릴수 있었기에 그들이 양성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중에는 전쟁에 이점이 되는 무기들을 생산 할 수 있는 기술자들,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종교인들, 명령체계를 조직 할 수 있는 정치인들도 있었기에 농경의 시작은 후에 정복자들이 피정복자들보다 앞서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가축화와 작물화는 이 뿐만 아니라 여러 도구와 다른 요소들의 생산, 예를들어 의류의 소재라던가 하는등을 가능케 했다.

5장 - 인류 역사가 갈라놓은 유산자와 무산자

1. 유산자와 무산자의 불평등한 갈등 관계 농경에 적합한 환경이었는데도 스스로 유산자(농경과 가축화로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자)가 되지 못하고 식량 생산을 수입하여 뒤늦게 유산자가 되거나 끝까지 무산자로 남은 집단들은 왜 농업 환경의 한계선에 겨우 걸쳐져 있는데도 스스로 유산자가 된 집단들처럼 되지 못하였을까? 이런 의문들에는 어떤 민족이 역사의 유산자가 되고 어떤 민족이 역사의 무산자가 되는지를 결정했던 각종 전개과정이 내포되어 있다.

 

2. 식량 생산 연대 추정하는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은 요구하는 샘플의 양도 많아야 하고 그렇기에 다른 오염물질로 인해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더 작은 샘플로도 측정이 가능한 보정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을 쓰며 이 책의 연대도 보정된것으로 표기한다. 어떤 장소가 식량생산의 식량생산의 발생지인지 수입지인지는 종의 야생조상의 분포도에서 알 수가 있고 그 분포지역에서 멀어질수록 그 종의 탄소연대가 늘어나면 분포지역에서 작물화 및 가축화되어 다른곳으로 이동 한 것이다. 야생종인지 가축화 및 작물화 된종인지는 야생종과 그렇지않은 종의 생김새와 특징이 다르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같은 종이 여러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가축화 및 작물화가 되었다면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유전학적으로 그것이 언제 종으로서 따로 분기된 것인지 조사해 본다면, 예를들어 어떤 종이 가축화 및 작물화 되기 이전에 이미 다른 갈래로 분기되어 그 이후에 다른 여러 지역에서 가축화 및 작물화가 된것이라면 그것은 말그대로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 가축화, 작물화의 발원지 최초로 가축화, 작물화가 된 지역이 있는가 하면 최초로 가축/작물화가 된 지역에서 그것을 받아들여 시작한 곳들도 있다. 또 한 가축/작물화를 받아들이고 이후에 그 지역의 토종 야생 동물, 식물을 가축 및 작물화 한 곳들도 있다. 최초로 가축/작물화가 시작된 대표적인 곳은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인더스강유역 및 중국등이 있다.

 

4. 지리적, 시기적 차별성에 따른 수렵 채집민의 식량 생산 다른 지역으로부터 가축/작물화를 받아들인 지역은 두가지 양상을 보이는데 첫번째는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이 외부로부터 그것들을 받아들여 시작한 것이고 두번째는 외부의 가축/작물화를 시작한 사람들이 그 지역으로 쳐들어가서 지역을 차지한 상황이다.

6장 - 식량 생산민과 수렵 채집민의 경쟁력 차이

1. 왜 수렵 채집민들은 식량 생산을 시작했을까? 식량 생산은 수렵 채집에 비해 장점도 있지만 그보다 긴 시간의 노동시간을 요구 했고 많은 지역에서 최초의 농경민들이 수렵 채집민을 교체 했지만 그들은 수렵 채집민보다 체격도 작고 영양 상태도 좋지 않았으며, 심각한 질병을 더 많이 앓았고 평균적으로 더 젊은 나이에 죽었다. 주변의 농경사회와 교류하면서도 끝까지 수렵 채집을 이어나간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식량생산을 시작한 사람들은 왜 시작하게 되었을까?

 

2. 유량형 수렵 채집민과 정주형 식량 생산자의 구별 우리는 흔히 유량형 수렵 채집민과 정주형 식량 생산자를 이분법 적으로 구분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또 한 식량 생산은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닌 경우도 많았다. 유량형 수렵 채집민과 정주형 식량 생산과 같이 이분법 적으로 나뉘지 않은 경우는 다음과 같다.

  • 유랑형 식량 생산인 경우: 뉴기니의 호수 대평원에 사는 현대의 유랑민들 중에는 정글을 개간하여 바나나와 파파야를 심는 사람들도 있으며 미국 서남부의 아파치족 인디언들은 여름철마다 북상하여 고도가 높은곳에 정착해서 농경을 하고 겨울 동안에는 다시 남쪽의 고도가 낮은 곳으로 돌아와 야생 먹거리를 찾으며 유랑했다. 그리고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많은 목축민은 철따라 예상되는 목초지의 변화를 십분 이용하기 위하여 계절별로 정해진 경로를 따라 야영지를 옮겨다닌다.
  • 정주형 수렵 채집인 경우도 있었다: 북아메리카 서북부의 태평양 연안과 같은 일부 풍요로운 지역의 수렵 채집민들은 정주는 했어도 식량 생산자가 되지는 않았다. 팔레스타인, 페루 해안, 일본 등지의 수렵 채집민들도 먼저 중주했다가 훨씬 나중 가서야 식량 생산을 시작했다.
  • 식량 생산이 아니라 수렵 채집인데도 토지를 관리한 경우: 뉴기니 사람들은 사고야자나 마운틴 판다누스 따위를 작물화 하지는 않았지만 이 같은 야생 식용식물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그 주변에서 경쟁자가 되는 다른 나무들을 없애고 사고야자가 자라는 늪지대의 수로를 청소하고 다 자란 사고야자를 잘라내어 새싹이 잘 자라게 한다.

3. 생활 방식의 상대적 가치에 따른 먹거리 선호 순위 사람들은 선호방식을 생각하고 정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안정적으로 식량을 얻고 싶은 사람은 식량생산을 선호할 것이고 당장 식량을 얻을 수 있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은 수렵 채집을 선호 할 것이다. 먹거리는 생활 방식, 문화에 따라 그 선호 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

 

4. 점진적으로 전파 된 식량 생산 체계 수렵 채집민들은 주변의 식량 생산을 보고 필요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였다. 예를 들어 무작정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수렵 채집 보다 생산성이 높은 경우 필요에 따라 받아들였다. 실례로 일본은 해산물과 토종 식물이 풍부하여 아시아의 집약적 농경을 늦게 받아들인 부분이다. 또 한 식량 생산 내에서도 주변에서 생산하는 생산물들이 기존에 생산하던 생산물 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면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5. 식량 생산과 수렵 채집은 상호경쟁의 대안 방식 식량 생산은 꼭 수렵 채집 형태에서 먹거리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채택된 방식이 아니다. 이 두가지 방식은 서로 상호 경쟁의 관계였는데 두 방식 중 더 효율적인 방식이 채택 되는 것이다. 현재의 결과론적인 입장으로 봤을 때 그 경쟁의 승리는 결국 식량 생산이 된 것으로 확인 된다. 그렇다면 왜 식량 생산이 주류 방식으로 채택 된 것일까? 그 이유는 아직도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고 있고 정설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이나 주요 요인 대략 아래와 같이 추려낼 수 있다.

  • 기후 변화 혹은 인간의 수렵 채집 기술의 발전 으로 수렵 채집 할 식량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 홍적세 이후 기후변화로 인해 작물화 할 수 있는 야색 작물들이 증가하였다.
  • 야생작물의 증가로 그것을 다룰 수 있는 기술들도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 식량생산으로 변화를 하고 그것이 인구 증가를 야기하면서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식량생산으로 더욱 더 변화하게끔 자가촉매 작용을 하였다. 이는 왜 식량 생산 사회의 사람들이 수렵 채집민들보다 영양 상태가 나빴는지도 설명해주는데 식량 생산은 늘었지만 인구 증가가 그보다 가파르게 진행 되었기 때문이다.

위의 요인들을 종합하면 야생 포유류가 풍부했고 야생 곡류는 풍부하지 않았고 따라서 곡류를 채집, 가공, 저장하는데 필요한 발명품들이 없었으며 단위면적당 더 많은 열량을 수확하는 일에 중점을 둘 만큼 인구밀도가 높지도 않았기에 초기에는 수렵 채집 쪽이 식량 생산보다 훨씬 더 보상이 컸다. 따라서 식량생산은 그 이후부터 점진적으로 필요에 따라 채택되어갔던 것으로 설명이 된다.

 

6. 현재에 이르도록 수렵 채집민으로 남아 있는 부족 인구가 늘어난 식량 생산 사회는 비교적 인구가 적은 수렵 채집 사회보다 병력면에서 우세하였다. 따라서 수렵 채집 사회는 식량 생산 민족에게 침략당하여 대체되거나 식량 생산을 받아들이거나였다. 그러나 지리적, 생태적인 이유로 식량 생상 민족에게 침략당하지 않거나 식량 생산을 받아들이기 힘든 지역의 사람들은 20세기 까지도 수렵 채집 방식으로 살아오고 있기도 하다.

7장 -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1. 초기 농경민들은 어떻게 각종 식물을 작물화 할 수 있었을까? 유전공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에 최초로 야생 먹거리를 작물화 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각종 식물을 작물화 할 수 있었을지 7장에서 서술한다.

 

2. 초기 식물의 무의식적 작물화 동물은 자손이 잘 자랄 수 있는 곳에 자손을 퍼뜨린다. 그러나 식물은 스스로 이동할 수 없기에 바람에 잘 날리는 씨앗, 혹은 동물이 섭취하고 배설하여 씨앗을 퍼뜨리는 등의 방법을 이용한다. 이 때 특정 동물들에게(그 동물들의 배설 장소가 식물들의 자손이 자라기에 좋은 장소일 때) 섭취와 배설이 유용하게끔 식물이 진화하는데 (예를 들어 도토리는 다람쥐에게 최적화하여 진화한다.) 이것이 무의식적 작물화이다.

 

3. 무의식적 작물화의 선택 조건들 인간이 더 크고 맛있는 과육이나 더 많은 양의 섬유나 기름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의 식물들을 찾고 섭취하거나 작물화 하여 그런 양질의 식물들이 점점 번식하였다. 따라서 이같은 요소들은 무의식적 작물화의 선택 조건들이 된다.

 

4. 돌연변이 종자의 유용성과 자연선택 인간이 시각적으로, 즉 겉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소들 외에 인간이 채취하기 힘든 종 중에서 채취하기 수월한 돌연변이가 생겨 작물화 된 경우, 변화가 많은 환경때문에 종들이 한번에 발아하면 멸종될 위험이 있어서 종자가 두껍게 진화하여 발아의 시기가 다르게 진화한 식물들 중 그렇지 않은 돌연변이 종자를 인간이 채집하고 작물화 한 경우, 돌연변이 종이여도 정상종과 생식하면 정상종화 되기 때문에 자가생식되어 돌연변이 종의 장점을 유지할 수 있는 종을 인간이 작물화 한 경우 등이 있다.

 

5. 고대 세계의 주요 농작물과 작물화 유형 작물화 된 종들의 시기가 다른 이유는 그 종들을 작물화 할 수 있는 난이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난이도가 쉬운 종들은 채집형에서 농사쪽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던 사람들에게 작물화하기 최적의 종들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비교적 쉬운 종들 부터 작물화 되고 난이도가 있는 것들은 추후에 기술의 발달로 작물화 되기 시작했다. 또 한 지역이 달라도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 있는 곡류 혹은 뿌리류 채소와 단백질을 보완할 수 있는 콩류 그리고 섬유나 기름을 얻을 수 있는 종들은 그 종이 다르더라도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종들이 작물화 되어 재배 되었다.

 

6. 인위적 선택에 의한 농작물 개발 원리 앞서 설명한 부분들로 작물화에 성공한 사례들도 있지만 도토리를 얻을 수 있는 떡갈나무처럼 작물화에 실패한 종도 있는데 그것은 일단 인간에 비해 다람쥐가 번식시키는 속도가 빠르고 열매를 얻기까지의 과정이 오래걸려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았을 뿐더러 쓴말을 갖고있는 유전 요인이 많아서 쓰지않은 도토리를 작물화 하여도 후세에 쓴맛을 내는 유전요인이 발현하여 다시 쓴 도토리가 열리기 때문에 작물화하기 좋은 종이 아니기 때문이다.

8장 - 작물화하는 데 적합한 식물의 식별과 성패의 원인

1. 야생식물의 작물화 문제 어떤 지역에 작물화가 늦게 시작된 데에는 그곳에 서식하는 야생 식물들이 작물화 하는데에 적합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러나 야생 식물종은 굉장히 다양하기 때문에 그 요인을 원인으로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이번 장에서는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고 원인을 알아가보려 한다.

 

2. 자발적 식량 생산이 이루어지지 못한 지역들 작물화 할 수 있는 종이 있어도 그 한 종 때문에 수렵, 채집 생활방식을 포기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수렵, 채집 생활방식을 포기하고 정주하여 농경생활을 하려면 가축, 작물화 할 수 있는 다양한 종들이 있어야 한다.

 

3. 비옥한 초승달 지대 식물군의 이점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지중해성기후대에 속하여 겨울은 온난다습하고 여름은 길고 덥고 건조하다. 이런 기후는 긴 건조기에도 살아남았다가 다시 비가 내리면 재빨리 성장을 재개할 수 있는 식물종을 선택한다. 한해살이 식물은 1년밖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큰 종자를 만드는 데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목질이나 섬유질의 줄기를 만들기 위해 낭비하는 에너지가 거의 없다. 또 야생 조상이 이미 풍부하고 생산성이 높았던 경우가 많았으며 제꽃가루받이식물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여 품종 개량의 이점이 사라지는 불상사가 적었다.

 

4. 서유라시아 지중해성기후대의 남다른 이점 서유라시아 지중해성 기후대는 다른 지중해성 기후대에 비해 가장 넓은 지역을 차지해 야생 동식물이 다양했고, 기후변화가 커서 한해살이식물의 비율이 유난히 높았다. 또한 고도 및 지형 변동이 심해 환경이 다양해졌으며 가축화 하기 좋은 대형 포유류가 서식했다. 수산자원이 비교적 빈약하여 수렵 채집보다는 작물화 및 가축화가 더 유리했다는 이점도 있다.

 

5. 고대인들의 민족 생태학적 지식 활용 민족 생태학이라는 학문은 사람들이 자기 지역 환경의 야생 동식물에 대하여 가진 과학적인 지식 체계를 연구하는 학문인데 이 학문의 많은 연구의 결과에서 수렵 채집이나 작물화에 성공한 농경민들은 그 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것으로 나타났다.

 

6. 고지대 뉴기니인들의 토착적 식량 생산의 한계 고지대 뉴기니인들은 독자적으로 식량 생산을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 지역의 동식물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타지역에서 어떠한 작물이 들어왔을 때 그것이 더 유용하다면 그것을 계산해서 본인들의 생산 작물을 그것들로 대체 하였기 때문이다. 즉 그 지역의 사람들이 무지하여 작물화 및 가축화 한 종의 수가 적고 비교적 덜 유용했던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작물화 및 가축화 할 수 있는 동식물군이 적었기에 단백질과 열량이 부족했다.

 

7.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지닌 생물상과 환경의 취약점 미국 동부에서도 식량 생산이 시작되기는 했으나 가축화 및 작물화 할 수 있는 생물상이 많지 않았다. 따라서 멕시코나 다른 지역에서 유용한 종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이후로 문명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다른 지역들에 비해 늦었기에 열강의 지배를 막기에는 부족했다. 뉴기니 처럼 이 지역 사람들도 자기 지역의 생물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다.

 

8. 척박한 환경에 둘러싸인 수렵 채집민들의 식량 생산 한 지역의 민족은 생산성 면에서 수렵 채집과 식량 생산중 어느것이 더 적합할지 저울질 하여 식량 취득 방법을 선택한다.

 

9. 오랜시간, 넓은 지역에 걸친 혁신적인 야생 동식물에 대한 수용성 어떤 문화나 가축화 및 작물화 할 수 있는 종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관대한 민족이 있고 배척하는 민족이 있다. 따라서 그것들은 오랜시간, 넓은 지역에 걸쳐 비교적 빠르게 혹은 천천히 수용되었다. 또한 어떤 지역에서 식량 생산이 시작되지 않았었다 혹은 현재도 시작되지 않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시작되지 않고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9장 - 선택된 가축화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

1.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성공 요소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그 이유가 제각각 다르다." 처럼 가축화의 성공 요인은 간단하지만 실패 요인은 다양하다.

 

2.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 대형 포유류 외에도 가축화 된 종들이 있지만 대형 포유류가 인간에게 다양한 효용을 주었기 때문에 이번 장에서는 대형 포유류만 다루기로 한다.

 

3. 고대의 가축화된 대형 초식동물 대형 포유류중 가축화에 적합한 종을 인간이 선택하고 가축화 하면 그 종들은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야생 조상과는 다른 쪽으로 진화를 한다.

 

4. 고대의 대형 포유류 14종이 유라시아에 집중된 이유 유라시아가 가장 큰 대륙이고 그만큼 다양한 기후와 지형이 있기 때문에 가축화 될 수 있는 대형 포유류 종이 많았다.

 

5. 비유라시아 지역에서 토종 포유류가 가축화되지 못한 이유 유라시아로부터 전파된 가축들을 바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아 비유라시아 지역에 토종 포유류를 받아들이지 않을 문화적 이유는 없었다. 그것은 이 지역에서 토종 포유류를 가축화 하지 못한 이유는 사람보단 포유류종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6. 모든 야생동물들은 한 번쯤 가축이 될 기회가 있었다. 가축화의 첫번째 단계는 애완동물의 양육이다. 비 유라시아의 각국에서도 다양한 동물들이 애완동물로서 길러졌지만 어떠한 이유들로 가축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7.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 시기 현대의 대부분의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는 기원전 8,000 ~ 2500년경에 가축화 되었는데 그 이후로는 더이상 가축화 되지 않았다. 또 한 그 시기에 다양한 지역에서 비슷한 종들이 가축화가 되었다.

 

8. 극복할 수 없는 가축화의 장애 요인 현대의 발달된 과학으로도 유의미하게 새로운 종을 가축화 할 수 없다 그것은 경제적 이유등 여러 요인들이 있다. 이것은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 실패의 원인이 인간보다는 그 종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9. 영원히 야생 상태로 남아 있을 운명 가축화의 실패 원인은 식성(먹이 대비 효용 부족), 성장 속도(성장이 느림), 감금 상태에서 번식 시키는 문제(치타, 비쿠냐 등 복잡한 구애 과정), 골치 아픈 성격(포악함), 겁먹는 성격(스트레스 취약), 그리고 사회적 구조(위계가 약하거나 배타적 영역을 가지는 경우 인간이 우두머리가 되기 힘듦) 등 크게 6가지로 나뉜다.

 

10.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이러한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수많은 대형 포유류 중에서 가축화에 성공한 종은 소수가 된것이다.

10장 - 대륙의 축으로 돈 역사의 수레바퀴

1. 식량 생산 전파의 주요 경로 식량 생산의 전파는 축이 남북(북,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인 대륙보다 동서(유라시아)에서 더 신속하게 일어났다. 그 증거중 하나가 작물화의 횟수인데 어떤 식물종이 빠르게 전파된다면 작물화가 적게 일어나지만 천천히 전파된다면 여러번 작물화가 된다.

 

2.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신속한 식량 생산 전파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작물화 된 대다수의 종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부터 전파 된 것이다. 이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가로축인 다른 지역들로 신속히 전파되어 그 지역들이 굳이 야생종을 작물화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3. 위도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유전자 조건 위도의 차이는 경도의 차이보다 기후의 변화가 더하다 즉 동서축의 차이인 경도가 달라도 기후가 대게 비슷하다. 따라서 농작물들이 적응하고 살아가는데에 용이하여 전파 속도가 빨랐다.

 

4. 남아프리카 공화국 근대사의 비극 남북 축의 차이와 체체파리나 다른 질병들로 인해 농작물과 가축등이 전파되지 않았던 남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그 이후에 도착한 농경민이나 유럽인들에 비해 입지가 적었고 그렇게 남아프리카 공화국 근대사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5. 남북아메리카의 남북 축을 따라 느리게 확산된 가축 작물 남북축의 더딘 식량 생산 전파는 남북 아메리카에서도 나타나는데 기후가 비슷해도 중앙아메리카의 열대기후 때문에 서로 전파되지 못하는등의 경우가 있다

 

6. 역사의 수레바퀴는 각 대륙의 축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대게는 위도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동서축이 더 신속하였다. 동서축과 남북축의 차이는 식량 생산 전파 뿐만 아니라 다른 기술 예를 들어 문자나 바퀴 같은 것들의 전파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식량 생산의 전파같은 교류가 있어야 기술들의 전파도 활발히 일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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