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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총,균,쇠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완벽 핵심 요약 (정복과 지배, 인류사의 미래)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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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책쥬스입니다! 🧃 지난 1편(프롤로그 ~ 2부)에 이어, 오늘은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역작 『총, 균, 쇠』의 나머지 부분(3부, 4부, 에필로그, 추가 논문, 2003년 후기)을 정리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인 '어떻게 소수의 유라시아인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메커니즘과 인류사의 미래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확인해 보세요. 내용이 방대하므로 필요한 부분을 골라 읽으시는 것도 추천합니다.


3부 - 지배하는 문명, 지배받는 문명

11장 - 가축의 치명적 대가, 세균이라는 사악한 선물

 

1. 인류 역사 변화의 결정적 요인인 질병의 진화 가축들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되어 진화된 질병들이 있고 그것들이 전쟁의 양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

 

2. 세균도 자연선택의 산물 각 질병의 증상들은 그 바이러스나 세균들이 효과적으로 전파되기 위한 자연선택 진화의 현상들이다. 그 증상들로인해 사람이 사망하는것은 그 사람을 숙주로 삼고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들 한테 득이될게 없지만 전파 즉 그들의 번식에 의한 부작용인 것이다. 예를들어 콜레라로 인해 지속된 설사로 사람이 사망한다고 해보자, 그러면 그것을 숙주로 삼고 있는 바이러스들은 숙주와 함께 소멸하겠지만 그 설사로 인해 바이러스들이 새로운 숙주들로 전파되는것이다.

 

3. 인간와 병원체 사이의 격화되는 진화적 경쟁 관계 병원체는 전파되기 위해 인간의 몸에서 증상을 일으킨다. 인간의 면역체계 또한 이에 대응한다. 이렇게 인간과 병원체 사이에 진화적 경쟁 관계가 계속되는 것이다.

 

4. 대중성 질병의 공통된 감염 특성 대중성 질병은 신속하게 전파되어 짧은 시간 안에 집단 전체를 감염시키고 사망에 이르게 하며 그로부터 살아남은 사람은 항체를 갖게 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들이 태어나서 감염과 전염에 취약한 개체가 되고 외부에서 감염자가 나타나 그들을 감염시키기 전까지 한동안 잠잠해진다. 이를 유행병이라고도 하며 대중성 질병이라고 한다.

 

5. 소규모 인구 집단은 질병에 취약하다 고립되어 있는 소규모 집단은 유행성 질병이 퍼지는 순간 대부분이 죽고 외부와의 교류로 인한 전파가 없기에 대중성 질병이 일어나기 힘들다. 대중성 질병은 조밀한 인구 집단에서 일어난다.

 

6. 세균들에게 행운을 안겨준 농경과 도시의 발생 수렵 채집민들은 인구가 조밀하지도 않고 거주지를 계속 옮겨 다니기에 가축의 오물로부터 오염된 땅에서 주기적으로 벗어났지만 농경으로인해 인구가 조밀해진 곳은 병원체들이 전파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규모가 커지고 도시가 되며 큰 국가간의 교역로 발달은 거대하게 연결된 병원체들의 사육장이 되었다.

 

7. 새로운 질병들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현재 인류를 질병에 이르게 하는 여러 세균들은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들로 부터 유래 했는데 가축으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되어 인간에게도 질병을 이으킬 수 있도록 진화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는 소들에게 감염되는 우역이 있는데 이는 오랜시간 소들을 가축으로 삼아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 그들의 우역균들에 노출된 사람들 속에서 홍역 바이러스로 진화하였다.

 

8. 자연선택을 통해 인간의 질병으로 자리 잡은 침입자들 다른 동물들에게 존재하던 병원균이더라도 그 동물들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의 몸속으로 들어와 사람의 신체 활동에 맞게 진화하여 새로운 질병으로 자리잡게 된다.

 

9. 인류 역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 세균들 신대륙을 정복한 구대륙 사람들의 총칼보다 병원균이 원주민들에게 더 많은 피해를 입혔다.

 

10. 신대륙에 뿌리 내린 구대륙의 전염병 남북아메리카에도 인구가 조밀한 곳들이 있었지만 그 조밀해진 역사가 짧아 병원체가 진화하기에 짧은 시간이었고 인간에게 치명적인 병원체들을 전파 시킬 수 있는 가축 종이 없었다.

 

11. 유럽이 여러 대륙에 준 사악한 선물 유럽인들은 그들이 정복하러 간 여러 대륙에 병원균을 전파하였다. 반면에 유럽인들만 전파한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열대 지역에서 질병을 얻는 경우가 있었으며 이는 그곳들을 식민지화 하는데에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12장 - 식량 생산 창시와 문자 고안과의 관계

1. 근대 제국 통치의 힘이 된 문자 문자는 지식의 전달등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문자가 어떤 민족에게는 생겼고 어떤경우에 그렇지 못했는지 원인을 파악해보자

 

2. 문자 체계의 기본 방식 (내용 요약 생략)

 

3.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독립적으로 고안된 수메르인의 설형문자 농사물이나 양의 수를 기록하는 회계적인 용도로 쓰기 시작한 단순한 모양의 기호들이 점차 언어로 발전하였다.

 

4. 인간의 보편적 창의성 입증하는 문자 체계 수메르 언어와 중앙아메리카의 고대 언어는 서로간에 교류 없이 독자적으로 개발이 되었는데도 유사한 법칙들이 있다. 이는 문자에 관해서 인간이 보편적인 창의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5. 청사진 복사와 아이디어 확산 문자가 발명되려면 사람들이 그것의 필요성을 느껴야 하고 그것을 뒷받침 할 수 있는 필경사들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개발 원리와 마찬가지로 문자도 '청사진 복사와 아이디어 확산의 원리'를 가지는데 이는 어떠한 청사진을 그대로 복사하거나 약간 변형시켜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개발하거나 약간의 정보만을 얻게 되어 세부적인 것들은 스스로 개발해야 하는 원리다.

 

6. 알파벳은 정확성과 간소함을 겸비한 문자 체계 알파벳은 어떤 민족들이 필요에 따라 모태가 되는 알파벳을 변형시켜 발전되어 왔다. 현대의 알파벳은 정확성과 간소함을 겸비하여 최후의 발전 단계에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7. 아이디어 확산을 통해 만들어진 체로키족 문자 어떠한 이유로 다른 언어의 청사진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그것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새로운 아이디어 확산을 통해 문자를 만들어야 하는데 체로키족의 시쿼야가 영어 알파벳을 참고하여 만든 체로키족 문자가 대표적인 예이다.

 

8. 외부의 영향을 받고 아이디어 확산을 통해 고안된 문자 체계들 한글이나 켈트족의 오검 알파벳등 아이디어 확산을 통해 고안된 문자 체계들이 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독립적으로 개발된 언어라고 하기에 의심쩍은 부분이 있는데 기록이 잘 보관될 수 있는 건조 환경임에도 수메르의 설형 문자 처럼 문자의 발전 과정에 대한 기록이나 증거가 없이 갑작스럽게 완성된 형태로 발견 되었기 때문이며 수메르와도 멀리 떨어지지 않았고 교역을 통해 접촉 하였었기 때문이다.

 

9. 초기 문자 체계들의 한계 초기 문자들은 조잡하고 불명료 했으며 기록 보관 같은 정치제도의 목적을 위해 쓰였을 뿐 평민층에서도 사적으로 쓰이지는 못했다.

 

10. 지리와 생태가 인간의 발명품 전파에 미친 영향 식량 생산이 시작되어 잉여 식량이 생겨나고 그것으로 연명 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필경사들이 있어야 문자가 발명되고 사용 될 수 있었다. 선행조건이 있었음에도 문자가 발명되지 못한 지역들은 농업의 시작이 늦어서 문자가 발명 될 충분한 시간이 없었고 스스로 문자를 발명한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거나 자연적 장애물로 인해 교류하지 못 한 곳들이다.

13장 -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

 

1. 왜 발명의 기술들은 각 대륙에서 다른 속도로 발전했을까? 이번 장에서는 대다수의 기술들이 왜 유라시아에서 발명 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2.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발명이 필요의 어머니인 경우가 더 많다. 어떤 사람이 호기심과 탐구정신에 의해 무엇인가를 발명하면 그 무엇인가는 본래의 용도 보다 그 이후에 다양한 쓰임새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ex) 증기 기관은 제임스 와트에 의해 탄광에서 배수를 하기 위해 만들어 졌지만 이후에 훨씬 다양한 용도로 주되게 사용되었다.

 

3. 발명의 영웅 이론과 그 문제점 어떤 대단한 발명가들이 기술의 발전을 이뤄 냈다는 '발명의 영웅' 이론은 기술의 발전에 있어서 개인을 지나치게 높이는 경향이 있다. 발명의 영웅 이론에서 내세우는 발명가들은 대단한 일을 한 것은 맞지만 그 발명품들을 무에서 유로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것과 비슷한 전신을 발전시킨것이기 때문이다. ex) 제임스 와트나 에디슨 같은 경우도 전에 발명 되었던 증기 기관이나 백열 전구를 개선한 것이다.

 

4. 기술은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발견된다. 사람들이 우연히 어떤 물건이나 자연의 소재들을 발견 했을때 그것을 활용할 용도를 찾는다.

 

5. 사회에서 발명품이 수용되는 데 미치는 요인들 어떤것이 발명 되었을 때 그것이 사회에서 수용되는 데에는 '경제적 이점', '가치관 및 위신', '기득권과의 양립 가능성', '필요성에 대한 확인의 용이성'이 있다.

 

6. 각 사회마다 발명품 수용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 의학의 발달로 인해 늘어난 평균 수명은 개인이 발명을 할 때 계획을 수립하고 지식을 축적하며 발명을 이어나갈 충분한 시간을 확보 해주어 발명을 용이하게 해준다. 또 한 아래의 요인들은 발명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요인들이다.

  • 경제 및 사회 조직 관련: 노동력 및 임금 수준(높은 임금과 노동력 부족은 기술 도입 촉진), 합당한 보상 가능성 (재산권 보호), 기술 훈련 및 보급 기회, 기술 발전에 투자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 발명을 했을 때 그것으로부터의 이득을 온전히 취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
  • 관념 관련: 혁신을 대하는 태도 (모험 정신), 과학적 사고방식, 다양한 의경과 이단자들을 용납하는 분위기의 유무, 종교의 영향(신기술 장려 혹은 억압).

7. 혁신에 대한 수용성은 시대에 따라 변동한다. 한 대륙 안에서도 기술에 대해 수용적인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가 나뉘고 수용성은 시대에 따라서 나뉘기도 한다. ex) 이슬람 사회는 중세 까지만 해도 기술 발전에 있어서 서유럽 보다 우위에 있었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

 

8. 발명 기술의 확산 경위 어떠한 발명 가술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평화적인 방법', '첩보 활동', '기술의 우위로 인한 점령으로 인한 전파'등의 수단을 통해 전파 된다.

 

9. 기술의 역사에서 지리와 확산이 담당하는 역할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곳은 기술을 외부로부터 받아들이지 못했다. 반면에 고립되어 있지 않고 기술을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기술을 버린 경우도 있다. 또 한 어떠한 기술을 스스로 발전시키다가 포기하고 버리는 경우도 있다.

 

10. 기술의 확산과 자가 촉매작용 기술들은 발전할수록 그것이 자가 촉매 작용을 일으켜 발전을 더욱 가속화 한다. 그 이유는 첫번째로 어떠한 기술의 발전을 위한 지식들이 점점 축적되어 기술의 발전을 용이하게 하고 두번째로는 그 기술과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기술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1. 식량 생산 → 정주형 생활 → 기술의 역사 수렵 채집 생활에서는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떠한 것을 발명하더라도 그것을 갖고 이동하기 쉽지 않았다. 따라서 식량 생산이 시작되고 정주형 생활이 시작되며 발명품들을 이동시킬 필요가 사라졌을 때 발명은 가속화 되었고 잉여 식량의 탄생으로 인해 전문 직군의 사람들을 부양 할 수 있게 된 것도 발명의 가속화에 영향을 미쳤다. 식량 생산과 정주형 생활이 확립 되었더라도 그 지역의 지리적 요건이나 사회 분위기 등에 의해 기술의 발전 속도는 달라졌으며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생산성이 높고 면적이 넓으며 인구가 많은 곳이 기술 발전에 유리했다.

 

12. 대륙별 기술 반전의 격차 요인 앞서 서술한 내용들을 토데로 보면 지리적 요인(위도의 차이나 지형적 장애물등)이 기술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4장 - 평등주의부터 도둑 정치까지

 

1. 역사를 좌우한 정부와 종교의 결합 인류사에서 종교가 유랑민들을 설득하여 평화적으로 사회에 편입 시키는 경우와 군대가 정복하고 종교가 그것에 대하 정당성을 부여하는 경우가 있었다.

 

2. 인간 사회의 가장 작은 범주인 무리 사회 무리 사회는 인류의 초창기에 대부분의 사회 형태였지만 그보다 큰 사회가 나타나고 발전해왔을 때도 여전히 무리 사회인 곳이 있는데 이는 얻을 수 있는 식량 자원이 한정되어 많은 집단 구성원의 유지가 힘든 곳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무리 사회는 수렵 채집 사회이고 3세대 정도의 가족 단위로 모여살며 계급의 구별이 없다.

 

3. 정착 생활을 하는 친족 집단 부족 사회 무리 사회보다는 큰 사회로 대부분 정착 생활을 하고 공인된 2개의 친족이 모여산다. 대인이라는 영향력 있는 사람이 있지만 공식 직위나 계급은 없으며 독점적 영향력을 행사한다기 보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을 뿐이고 세습되지도 않는다. 대인은 주로 개인의 역량으로 된다. 부족 사회는 그 구성원이 크지 않으므로 친인척관계에 있으며 서로 대부분이 아는 사이기에 갈등의 발생 가능성이 적으며 그들 사이에서의 갈등 해결 방식이 있기 때문에 따로 관련된 기구들은 없다.

 

4. 독점적 권력 세습 체제인 추장 사회 추장 사회는 부족 사회보다 그 규모가 크며 추장이 독점적이고 세습적인 권력을 갖고있다. 그런 권력을 가진 추장은 생산물들을 독점적으로 관리하고 분배했다. 또 한 인구 규모가 크므로 서로 간에 갈등이 생길 확률도 컸다. 추장 사회에서는 관료 체제가 있었지만 국가에서 처럼 전문적이지는 않았고 한명이 여러 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계급 또한 추장 사회의 특징인데 추장과 함께 사회를 관리 할 관료들과 추장의 잡일을 도맡아 해줄 노예들이 있었다. 추장 사회도 같은 분야 내에서 여러 형태로 나뉘어지는데 지배계층이 평민에 비해 화려한 삶을 살아서 그 유물이나 관련 건물 유적들로 식별이 용이한 사회가 있었고 지배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차이가 모호한 경우도 있었다. 추장 사회는 대부분 정주형 식량 생산 사회였지만 자원이 풍부한 경우 수렵 채집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수렵 채집을 하더라도 자원이 굉장히 풍부하면 잉여 식량으로 식량 생산 인구 외의 인구도 부양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도둑 정치가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방법 도둑 정치가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방법과 이데올로기 및 종교가 중앙 집권적 사회에 주는 두가지 중요한 이득은 아래와 같다.

  • 도둑 정치가의 네 가지 해결책: 1) 무력 사용과 억압 (반대 세력 제압), 2) 대중에게 물질적 혜택 제공 (잉여 생산물 재분배), 3) 종교적·이데올로기적 정당화 (권력자의 신성화), 4) 행정·조직적 서비스 제공 (사회 질서 유지).
  • 두 가지 핵심 이득: 1) 정당화 기능 (지배자의 권력을 신성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포장), 2) 사회적 결속 강화 (공통된 가치와 믿음 공유).

6. 무리, 부족, 추장 사회에서 초기 국가 형태로 근대에 추장 사회에서 초기 국가로 발전한 사례가 종종 있었기에 해당 데이터로 분석해 보자면 추장 사회와 초기 국가 형태의 차이점은 아래와 같다. 추장 사회는 아직 혈연과 의례 중심의 비교적 단순한 권력 구조인데 반해 초기 국가는 인구 규모가 훨씬 크고, 관료제·군사력·법·세금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사회를 유지하며, 종교와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권력을 정당화한다. 즉, 초기 국가는 추장 사회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체계적인 정치·행정 구조를 갖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7. 강력한 통치 체제 가진 국가 국가 체제가 그보다 더 단순한 추장 사회같은 더 작고 단순한 사회 형태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이유는 "더 발전된 기술과 강력한 중앙 집권적 통치 체제로 인한 물자와 명령 조달의 용이함" 그리고 "종교와 이데올로기로 인한 병사들의 사기 진작" 덕분이다.

 

8. 지역 인구 증가가 사회적 복잡성과 국가 형성에 미친 영향 같은 추장 사회라도 인구 규모가 큰 곳은 더 중앙 집권 적이고 체계 적이다. 즉 인구 증가가 무리사회부터 국가 형성에 이르기 까지의 발전에 중요한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이기에 그 인구 증가의 원인을 찾는 것이 무리 사회에서 국가 형성에 이르는 발전 과정의 핵심이다.

 

9. 집약적 식량 생산과 사회의 복잡성은 상호 자극 관계 인구가 증가하면 사회가 복잡해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 식량 생산이 강화 되면서 인구가 증가한다. 이처럼 식량 생산과 사회의 복잡성은 상호 자극 관계이다. 식량 생산은 앞에서 설명해왔던 대로 잉여 식량을 축적하여 전문 인력의 양성을 가능하게 하고 정주형 주거 형태를 만들어 사람들이 한곳에 정착 생황을 하게 하며 농사철 이외에는 노동력을 사회 발전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식량 생산은 사회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10. 대규모 사회가 복잡해지고 중앙집권화될 수밖에 없는 이유

  1. 인구가 많아지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지기에 갈등을 중재할 공권력이 필요해진다. 2) 인구가 많아지면 전체 인구가 공동 결정을 내리기 힘들게 되므로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중앙 집권적 기구와 계급이 필요해진다. 3) 효율적인 자원의 재분배를 할 수 있는 중앙 집권적 기관이 필요하다. 4) 많은 인구가 제한된 공간 안에서 살아가기에 인구 밀도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중앙 집권적 기관이 필요하다.

11. 갈등 해결, 올바른 의사 결정, 조화로운 경제 재분배 같은 부족 사회나 추장 사회에서도 더 카리스마 있는 대인이나 추장이 있기 마련이고 이는 갈등 해결에 더 유리하여 사회의 분열을 막고 더욱 복잡하고 중앙 집권적인 사회로의 발전이 용이해진다. 중앙 집권적인 사회는 갈등 해결과 부의 재분배 그리고 다른 작은 사회를 흡수 합병 하는 등 분열되어 있고 작은 규모의 사회보다 유리한 사회의 입장이 된다.

 

12. 외부 세력에 의해 융합, 합병 되는 소규모 사회 외부 세력으로 부터 위협을 받은 사회들이 서로 융합되고 합병되는 경우들이 있다. 예를 들어 거대한 적에게 맞서기 위해 연맹을 맺는 경우가 있다.

 

13. 독일제국과 줄루 국가 등에서 볼 수 있는 통합의 예 독일의 여러 공국들은 프랑스의 선전포고(외부의 위협)를 받고 독일 제국에 자치권을 양도하여 독일 제국은 통일되었다. 아프리카 동남부에 세워진 줄루 국가는 여러 추장사회로 나뉘어져 있던 줄루 족들을 추장 딩기스와요가 다른 추장 사회를 정복하며 세웠다.

 

14. 정복의 궁극적 요인과 직접적 요인 일단 정복을 하려면 정복의 필요성을 느껴야 하는데 수렵 채집 사회에서는 그 필요성이 적다. 수렵 채집 사회는 이동을 하고 노예도 필요 없을뿐더러 잉여 식량도 없기 때문에 피지배 인들을 부양할 수 없다. 또 한 정복지로부터 공물을 받을 이유 즉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없고 그것들을 관리 할 중앙집권적 체제도 없다. 이런 정복의 직접적 요인들은 궁극적 요인인 식량 생산으로부터 형성된다.


4부 -인류사의 발전적 연구 과제와 방향

15장 - 대륙 간 불균형 이론과 원주민들이 낙후된 원인

1. 대륙 간 불균형 이론 증명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는 백인들이 가장 나중에 진출한 대륙이고 가장 특이한 원주민 사회와 기후를 갖고있다. 따라서 대륙 간 불균형 이론을 증명 하기에 좋은 곳이다.

 

2. 근대 유일의 뒤처진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사회의 비참함 4만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오스트레일리아의 인류는 다른 대륙의 인류보다 간석기의 사용 자루달린 도구의 사용, 배의 사용이나 벽화등 출발이 훨씬 빨랐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다른 대륙들 보다 뒤쳐진 것을 넘어서 백인들이 발견할 때 까지도 석기와 수렵 채집 생활을 하고 있는 등 문명이 없었다. 심지어 홍적세 빙하기에는 붙어있다가 이후에 나뉘어진 뉴기니의 원주민들 보다도 뒤처져 있었다.

 

3.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의 환경적 차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해수면이 낮은 홍적새 빙하기에 인류가 유입된 이후로 해수면이 다시 높아진 후에는 인류의 유입이 없었으며 기후도 다른 대륙보다 척박하고 토양의 영양분도 적었다 이는 가까운 뉴기니와도 대조되는 환경이다.

 

4. 독립적으로 식물의 작물화가 시작된 고지대 뉴기니 뉴기니의 고지대는 자체적으로 집약적 식량 생산이 시작되었으며 배수 시설이 만들어졌으며 그에 따라 인구밀도 또한 높았다.

 

5. 뉴기니의 생태적, 지리적 저해 요인 뉴기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대조적으로 자체적 식량 생산을 시작했지만 유럽인들이 오기 전까지 석기를 사용하는등 발전의 속도가 더뎠다. 그 이유는 단백질 공급원이 부족하여 인구 부양 능력이 비교적 적었고 가축이 돼지와 닭뿐이어서 동력원이 인간 외에는 없었으며 지리적으로도 밀림이 많고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주변과의 교류를 하기에도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6. 척박한 대륙 오스트레일리아에서의 가축화, 작물화 장애 요인 오스트레일리아는 척박하고 토양의 영양분도 적고 인류가 사냥 기술이 발전된 후 비교적 늦게 들어와서 가축이 될만한 대형 포유류들을 멸종시켰기에 식량 생산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또 한 엘니뇨 진동이라는 현상 때문에 정착하여 식량 생산을 하기에는 연중 기후가 불안정했다. 대신 부지깽이 농법이라는 수렵 채집의 생산성을 더욱 높일 수 있는 방법을 행했다.

 

7.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먹거리 장만 방법과 도구의 발달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요즘같이 사막등에 모여살지 않고 동부 지역에 살았었다. 이들은 이들 나름대로 앞서 말한 부지깽이 농법이나 장어 양식장등을 발전시켰고 간석기등의 도구를 발달시켰다.

 

8. 고립성과 인구 규모가 오스트레일리아의 기술 퇴보에 미친 영향 오스트레일리아는 인접한 섬들과 바다와 사막으로 가로막혀 있고 동부지역도 사람이 살 수 있는 중심지간에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서로 교류하지 못하고 이러한 고립은 홍적세 시기에 낮은 해수면으로 주변의 섬들과 교류할 때 얻었던 기술들조차 퇴보하게 만들었다.

 

9. 유랑형 수렵 채집민인 오스트레일리아인의 선별적 문화 수용 역사 시대에 오스트레일리아 서북부에는 해마다 인도네시아의 마카사르 인들이 배를 타고 찾아왔는데 이들은 이곳이 너무 건조하여 정착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정착하지 않고 짧게 오가는 동안 깊은 내륙에 있는 원주민들은 그들과 접촉할 기회가 없었으며 서북부 해안에 있던 원주민들만이 그들과 접촉할 수 있었다. 원주민들은 그들로부터 돛을 단 카누나 담뱃대등 유랑 생활에 적합하고 문화에 맞는 문물들만 받아들였을뿐 용광로나 돼지같은 것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0. 인류의 문화와 기술 전달에 지대한 영향 미친 지리적 환경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 사이에는 많은 섬들이 있는데 오스트레일리아 케이프요크 지역과 섬들중에 가장 큰 섬인 무랄루그는 거리가 16km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식량 생산이나 도구등의 기술이 발달한 뉴기니 고지대에서 무랄루그 까지의 거리가 있기에 고지대의 기술들이 무랄루그와 교역 할 때 쯤이면 그 기술들이 많이 희석되었는데 무랄루그에선 고지대의 농사법과 달리 화전농업을 하였다. 이렇듯 케이프요크 원주민들이 보기에 그 희석된 기술들은 변변찮아 보였고 화전농업은 건조한 케이프요크에서는 어려웠을뿐더러 돼지는 농업으로부터 얻는 식량이 뒷받침 되지 않는 한 사육이 힘들기에 무랄루그의 기술들을 도입하지 않았다.

 

11. 유럽인들의 뉴기니 정복 의지가 좌절된 원인 뉴기니 저지대에는 말라리아의 위험때문에 유럽인들이 정착하지 못했으며 유럽인들이 주식으로 삼고 있는 농작물들이 뉴기니의 기후와 지형에서는 잘 자랄수가 없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뉴기니에 정착하여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식민지화 하는것을 포기했다. 뉴기니 인들은 인도네시아와 활발히 교류 했으므로 유럽인들이 갖고 있는 풍토병에도 면역이 있었다.

 

12. 유럽의 총기, 병원균, 쇠가 원주민을 제거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이 없었으며 그 지역 또한 의학의 발달로 나중에는 유럽인들이 진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척박한 지역을 제외하고 식량 생산이 가능한 곳에서는 유럽인들의 주식인 밀과 같은 농사가 가능했다. 유럽인들이 농사 지을 땅에 원주민들이 수렵 채집을 하고 있으면 그들을 총으로 학살했고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의 홍역같은 병원균에 취약했으므로 인구가 크게 줄었다.

 

13.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회를 창조한 사람들은 원주민들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형성한 것은 원주민들이었다. 이들이 유럽인들 같은 기술을 갖지 못한것은 인종적 열등함이 아니라 지리적 요인 때문이다.

16장 - 동아시아의 운명과 중국 문명의 확산

1. 중국의 역사는 동아시아 전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열쇠 중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통일 되고 중앙집권체제가 시작된지 오래 되었는데 많은 인구의 다양한 민족들이 인도나 러시아같은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나라와는 다르게 만다린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중국이 한때는 다양한 언어를 갖고 있었겠지만 내부적으로 중국화 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중국화는 주변국 한국, 일본, 인도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기에 중국의 역사는 동아시아 전 역사를 파악할 수 있는 열쇠라고 볼 수 있다.

 

2. 중국의 언어지도를 통해서 보는 동아시아의 언어 변동 북중국의 중국티베트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이 다른 주요 3가지 언어(오스트로아시아어족, 먀오야오어족, 타이카다이어족)를 사용하는 남중국인들을 병합하거나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몰아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중국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고 중국 지역은 대다수가 중국티베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3. 중국의 다양한 문화를 통일시켜준 지리적 요인 중국도 식량 생산을 시작하고 여러 기술들이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북중국과 남중국의 위도 차이로 인한 기후의 차이로 생산되는 식량이 달랐지만 남북 사이의 거리가 비교적 가까웠고 두 지역을 가로막는 험준한 지형도 없었기에 문화적으로 통일되기 용이했다.

 

4. 동아시아 내에서 가장 혁신적으로 문물을 발전시킨 중국 남중국에서 개발된 기술이 북중국으로 전파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기술의 주된 전파 방향은 북에서 남으로였다. 식량 생산 시작 이후에 발전된 중국의 기술들은 한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등으로 전파되었고 남중국인들이 동남아시아로 밀려나 그 지역의 언어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17장 - 동아시아와 태평양 민족의 충돌

1. 중국 이주민들은 어떻게 폴리네시아인이 되었을까? 남중국에서 출발한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은 자바섬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이주하였고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교체하였으며 뉴기니의 저지대를 차지하였지만 고지대의 원주민들은 몰아내지 못했다. 이번장에서 그 이유를 알아가 보려 한다.

 

2. 오스트로네시아 어족 4개 어파의 동질성 오스트로네시아 어족 4개중 가장 많은 언어가 속한 것은 말레이폴리네시아 어파이며 그 지역 또한 가장 넓다. 나머지 3개 어파는 주로 타이완에 집중되었는데 오스트로네시아 어족 중 3개 어파의 후손들이 타이완 원주민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3. 타이완의 따펀컹 문화가 오스트로네시아 일대에 전파된 경로 독특한 장식이 있는 따펀컹 토기가 발굴된 지역의 문화를 따펀컹 문화라고 하는데 남중국과 타이완에서 발견되다가 필리핀, 인도네시아, 뉴기니 일대에서도 발견되었다. 이는 오스트로네시아 인들의 진출 경로를 뒷받침 해준다.

 

4. 오스트로네시아 일대의 고고학적, 언어학적 증거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의 원시 언어들을 복원 해봤을때 그 언어들의 전파 과정이 오스트로네시아 인들이 진출하며 퍼졌던 고고학적 증거들과 일치한다. 오스트로네시아 인들은 유럽인들이 신대륙의 원주민들을 교체했던 것처럼 식량 생산으로 인한 발전된 기술들로 원주민들을 교체하였다. 따라서 원래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의 언어는 남아있지 않다. 또한 오스트로네시아 인들이 남중국에서 타이완, 타이완에서 인도네시아, 필리핀, 뉴기니 등으로 진출한 것은 오스트로네시아 어족에서 분화된 언어들로 알 수 있는데 타이완에서는 가장 많은 분화가 이루어졌고 그 이후에 진출한 지역에서는 분화될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기에 분화된 수가 적다. 즉 남중국에서 타이완, 타이완에서 인도네시아, 필리핀, 뉴기니 등으로 진출한 방향을 알 수 있다.

 

5. 오스트로네시아인의 언어도 유전자도 뉴기니에는 침투하지는 못했다 오스트로네시아 인들은 뉴기니의 비스마르크 제도와 솔로몬 제도등의 원주민들과는 많이 접촉하여 지냈는데 지금 그 제도들에서 사용되는 언어에 오스트로네시아어가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유전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고 뉴기니 내륙에는 유전자는 커녕 언어또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는 보르네오섬이나 다른 지역으로 진출할 때 그곳의 원주민들을 불도저처럼 밀어낸 방식과는 다르게 진출하였기 때문이다.

 

6. 뉴기니에 남아있는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의 흔적 라피타 토기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의 초기 토기들은 무늬가 없었지만 뉴기니에 진출하고 난 후에는 무늬가 있는 라피타 토기를 만들었다. 이는 옷감에 문신을 새기던 아이디어를 토기에도 접목시킨 것으로 보인다.

 

7. 뉴기니의 맨해튼 도심 말라이 섬 말라이 섬 주민들은 어부이면서 토기를 제작하고 파는 기술자이자 상인들이기도 했다. 그들은 인근 큰섬으로 토기들을 갖고가서 돼지와 같은 식량들과 교환했다.

 

8. 뉴기니인들의 독립적인 문물 수용 뉴기니 내륙의 고산지대에서는 식량생산이 시작되고 기술발전이 이루어져 오스트로네시아인들에 뒤지지 않았기에 그들의 내륙 진출은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뉴기니 고산지대 원주민들은 오스트로네시아인들의 가축을 받아들이는등 문물을 수용하였다.

 

9. 환경이 역사를 형성했던 예를 보여주는 동아시아 및 태평양 일대 동아시아 및 태평양 일대는 지리와 환경에 따라 생산할 수 있는 식량들이 달랐고 식량 생산의 가능성 자체도 달랐다. 이에 따라 그들은 제각기 다른 역사를 맞이하였다.

18장 - 남북아메리카가 유라시아보다 낙후됐던 원인

 

1. 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에게 정복당했을까? 이번 장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에게 정복 당한 원인을 찾는다.

 

2. 정복의 궁극적 요인인 식량 생산과 가축화, 작물화의 상관성 남북아메리카에는가축화 할 수 있는 대형 포유류 대부분이 홍적세 말기에 멸종하여 그 수가 적었는데 이는 수송이나 농사에 적용할 동력원이 없었다는 것이다. 또 대륙 내부에서 교류를 막는 지형들이 있어 가축과 작물들의 교류가 힘들었으며 작물화 할 식량도 유라시아의 벼나 밀보다 단백질 함량이 부족한 옥수수등에 의존했기에 영양측면에서도 유라시아에 불리하였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남북아메리카와 유라시아의 기술 발전 차이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정복의 직접적 요인 - 병원균, 기술, 정치조직, 문자 유럽의 열강들이 남북아메리카를 정복할 수 있었던 직접적 요인은 다음과 같다.

  • 병원균: 대형 포유류의 가축화와 인구가 밀집하는 촌락들의 발전 및 도시화로 인해 발생한 병원균이 남북아메리카에는 없었다.
  • 기술: 대형포유류의 부재로 인한 동력원의 부재와 지형적 장애로 인해 바퀴와 수송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다.
  • 정치조직: 유라시아에는 훨씬 앞서 중앙집권체제가 등장하고 여러 제국이 존재했다. 남북아메리카에도 잉카와 아즈텍 두 제국이 존재하긴 했지만 유라시아보다 훨씬 늦게 등장하였다.
  • 문자: 정보의 기록이나 전달 및 명령의 전달면에서 문자가 발전한 유라시아가 훨씬 유리하였다.

4. 유라시아와 남북아메리카의 역사적 궤적 남북아메리카는 유라시아에 비해 식량 생산도 훨씬 늦었고 내부적으로도 지형때문에 기술들이 서로 교류하지 못하였다.

 

5. 왜 남북아메리카는 유라시아에 뒤처졌을까? 남북아메리카에는 일단 유라시아보다 인류의 도착 시기가 늦었고 지리적으로 남북 축 방향이어서 기후 차이로 인한 문물 전파에 불리했다.

 

6.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가축화, 작물화 경쟁력 남북아메리카에는 가축화 작물화 할 우수한 품종이 없었다. 수렵 채집에 비해서 식량 생산의 효용이 크지 않았기에 유라시아보다 늦게 시작되었다.

 

7. 유라시아의 문물 확산을 도운 동서 축 방향 유라시아는 비교적 기후가 비슷한 동서축 방향으로 위치해 있기에 문물의 전파가 빨랐으나 남북아메리카는 그 반대였다.

 

8. 남북아메리카의 지리적 분열이 언어 분포에 미친 영향 남북아메리카에서는 지리적, 기술적 요인들로 인하여 어족의 팽창이 유라시아만큼 용이하지 못하였다.

 

9. 바퀴와 문자의 역사를 통해서 본 원주민 사회의 고립성 지형적 장애로 인한 원주민 사회의 고립은 기술의 전파와 발전을 막았다. 중앙아메리카에서 바퀴는 그저 장난감에 적용되는 형태로 있다가 사라졌는데, 이는 고립된 민족에서 기술이 정체되거나 사라지는 사례를 보여준다.

 

10. 스칸디나비아인들이 아메리카로 이동한 의미 그린란드에 정착해 있던 스칸디나비아 인들이 북아메리카로 이동했을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북아메리카를 식민지화 하지 못하였는데, 해당 위도 환경에서 원주민들의 생존능력이 월등했고 본국인 노르웨이도 정복 활동을 지원해줄 정도로 부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1. 유라시아인들의 남아메리카 식민정책 두번째 유럽의 아메리카 진출(콜롬버스 등)이 성공했던 이유는 그 위치가 식량 생산이 가능한 기후대였고, 유럽 본국들이 정복 활동을 지원해줄 정도로 부유했으며 기술 또한 더욱 발전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19장 - 아프리카는 왜 흑인 전치가 됐는가

1. 아프리카인들의 다양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아프리카 인종은 생각보다 다양한데, 이는 지리적 환경이 다양하고 선사시대의 역사가 길기때문이다.

 

2. 아프리카의 주요 다섯 인종 사하라 이북의 백인, 사하라 이남의 흑인, 코이산족, 피그미족 그리고 마다가스카르의 인도네시아인(오스트로네시아계)이다.

 

3. 흑인, 백인, 코이산족, 피그미족, 인도네시아인 인종 분포와 어족 분포는 유사하다. 코이산족이나 피그미족의 언어 분포가 산발적인 것은 다른 흑인들의 침략으로 흩어졌음을 시사한다.

 

4. 신체적, 언어학적 증거로 살펴본 선사시대의 침탈 행위 철기와 식량 생산 기술을 가진 반투족(흑인)이 팽창하면서 코이산족과 피그미족을 침탈하고 영역을 차지했다.

 

5. 아프리카 농작물의 발원지와 작물화한 농작물들 사하라 사막 이북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작물들이 유입되었으나, 사하라 이남은 기후가 달라 토착 작물들이 작물화되었다.

 

6. '운 좋은' 아프리카인들 적도 이남에는 작물화할만한 종들이 없었다. 식량 생산이 가능했던 '운 좋은' 아프리카인들(반투족 등)이 그렇지 못한 코이산족과 피그미족을 침탈하였다.

 

7. 역사의 우연으로 남아 있는 아프리카의 토착 어족들 과거에는 사막이 아니었던 사하라 사막 지역에서 아프리카의 식량 생산이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8. 오스트로네시아인이 마다가스카르로 이주한 대장정의 의미 오스트로네시아인이 인도네시아 지역에서 무역로를 통해 곧장 마다가스카르로 왔을 가능성이 있다. 왜 쉬운 연안 항로를 놔두고 먼 바다를 건넜는지는 미스테리다.

 

9. 급속도로 팽창한 반투족이 코이산족에게 미친 영향 철기와 농업 기술을 가진 반투족이 코이산족의 영역을 침탈했다.

 

10. 사라진 코이산족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반투족의 인구가 규모가 커지고 건조한 지역 작물과 목축까지 경제 체제에 포함시키면서 코이산족을 침탈하였다. 다른 대륙 사례처럼 남성들은 살해당하고 여성들은 납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1. 아프리카의 발전이 유라시아에 비해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작물화·가축화 할 수 있는 종들이 적었고, 대륙 면적이 유라시아의 절반 정도였으며, 남북 축으로 되어 있어 기후 차이로 인한 교류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에필로그 - 과학으로서의 인류사의 미래

1. 인간 사회의 궤적에 영향 미치는 환경적 요소들 (앞선 요약 내용 정리이므로 생략)

 

2. 대륙간의 차이 요인들을 수치 자료로 남기는 작업 이 책이 풀어내지 못한 부분들도 있고 정답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료들을 적립해가는 것에 의의를 둔다.

 

3.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유럽에 추월당한 비운의 과정 빠른 식량 생산 시작으로 초기에는 우세하였으나, 과도한 개발로 인한 환경 파괴와 사막화로 우위를 상실했다. 반면 유럽은 집약적 농업에 적합한 기후와 지리를 가져 점진적으로 더 우세해졌다.

 

4. 중국은 어쩌다 기술의 선도자 위치를 유럽에 추월당했을까? 우수한 환경적 조건으로 15세기까지 기술적으로 앞섰으나, 정치적 파벌 싸움의 결과로 고립주의 정책(선단 파견 중단, 조선소 해체 등)을 펼치면서 대항해 시대에 유럽에 뒤처지기 시작했다.

 

5. 유럽의 만성적 분열과 중국의 만성적 통일 통일된 중국은 한 지도자의 결정이 전체 정책이 되어 리스크가 컸던 반면, 분열된 유럽은 한 나라에서 거절당해도 다른 나라(ex: 콜롬버스의 스페인 지원)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또 경쟁을 통한 발전이 가능했다. 중국의 지형은 통일에 유리했고, 유럽의 지형은 분열에 유리했다.

 

6. 원주민들이 세계를 지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때의 우위가 영원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선진국들도 결국 일찍이 식량 생산이 시작된 곳이나 그곳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곳들이다.

 

7. 문화적 차이는 환경적 차이의 산물이다 초기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특이한 문화적 요소가 나중에 큰 영향력을 가질 수도 있다. 이 문제에 접근하는 최선의 방법은 환경적 요인으로 풀리지 않는 역사적 경향들을 연구하는 것이다.

 

8. 역사를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개인적 특이성 개인이 역사에 미친 영향('거인 이론')도 일리가 있지만, 큰 흐름에서 보자면 환경이 역사의 궤적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9. 역사적 과학과 비역사적 과학을 구별하는 특징 물리학 같은 역사적 과학에서는 궁극적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지만, 비역사적 과학(인류사 등)에서는 궁극적 원인을 찾으려 한다.

 

10. 역사적 체계들의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설명하는 방식 역사적 체계는 변수가 매우 많기에 복잡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띈다.

 

11. 인류 사회에 보탬이 될 인간 사회에 대한 과학적인 역사 연구 기간이 길고 규모가 큰 연구를 통해 단기적 사건의 특이성을 평준화하고 역사적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역사학은 인류 사회의 미래에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자연 발생적 실험 등을 이용해 연구를 진행중이다.


특별 증보면

추가 논문 -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

1. 냉철한 논쟁을 하지 못하는 일본 고고학계 과거에 대한 해석이 일본인의 현재 행동과 정체성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냉철한 논쟁이 힘들다.

 

2. 풍부한 식량이 나는 일본 섬나라여서 침략을 받은 적이 없어 고유 문화가 발달했고, 다습한 기후로 식량 생산성이 높아 인구 밀도가 높다.

 

3. 일본인의 조상은 누구인가? 아이누족(캅카스 인종 추정), 한국인, 중국인의 유입과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비교를 통해 두 언어가 적어도 5000년 전에 갈라졌음을 알 수 있다.

 

4. 일본의 토기가 불러일으킨 충격 세계 최초의 토기가 일본(조몬 문화)에서 발견되었다. 높은 식량 생산성 덕분에 수렵 채집민임에도 토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토기 사용은 식생활 변화(죽 등), 출산 주기 단축, 노인 수명 연장, 식량 폭 확대 등 큰 영향을 미쳤다.

 

5. 수렵 채집을 했는데도 인구밀도가 높았던 조몬인 먹을 것이 풍부하여 균형 잡힌 식생활을 했고 인구 밀도가 높았다. 대륙의 농경민들이 고대 일본을 침탈하지 못한 이유는 당시 한국의 농업 기술이 일본의 수렵 채집에 비해 압도적 우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6. 한반도에서 전래한 생활 양식이 일으킨 변화 기원전 400년경 한반도 남부로부터 철기, 농경 문화 등 새로운 생활 양식(야요이 문화)이 규슈 지역에 도래했다.

 

7. 야요이 문화의 급격한 발전 야요이 문화는 일본 전역으로 급격히 퍼졌고, 얼마 후 통일된 중앙 집권 체제가 들어섰다.

 

8. 일본인 조상에 관한 세 가지 학설

  1. 조몬인의 후예설, 2) 한국인 이주민 후예설, 3) 한국인 이주민의 인구 증가로 인한 조몬인 대체설. 유전자 비교 결과 현대 일본인은 한국인과 비슷하고 조몬인은 아이누인과 비슷하다. 언어적 차이는 백제 등 특정 시기 이주민의 영향으로 설명될 수 있다.

2003 후기 - 총, 균, 쇠 그 후의 이야기

1. 총, 균, 쇠가 불러 일으킨 반향 "발전의 차이는 환경의 차이에서 유래된다"는 논리를 뒷받침할 증거들이 더 나오고 있으며 견고해지고 있다.

 

2. 기술 확산의 영향과 기술 습득을 위한 노력 마오리족이 유럽인의 머스킷과 감자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전쟁의 양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감자의 높은 생산성은 전사들의 전투 식량 조달을 용이하게 하여 전쟁을 지원했다.

 

3. 왜 중국이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는가 통일된 중국 vs 분열된 유럽의 구조적 차이 때문이다. 정치적 분열이 기술 혁신에는 최적일 수 있어도 경제, 안정, 행복에는 최적이 아닐 수도 있다.

 

4. 혁신을 가져오는 최적 조건 유럽의 '최적의 분열 상태'는 산업과 경영에도 적용된다. 독과점이 아닌 경쟁 환경,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한 반폐쇄적인 조직이 발전한다.

 

5. 인과 율의 사슬 속에서 효과를 내는 제도 같은 환경이라도 제도(ex: 남한과 북한)에 따라 발전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지리적·역사적 배경 위에 좋은 제도를 적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의 광범위한 영향을 중재할 직접적인 기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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